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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설교문 예시

요한복음 20장 1-14절 부활절 설교 예시

by 진심설교코치 2023. 3. 30.

이 설교문은 부활절에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전한 설교입니다. 

 

 

오늘 설교 코칭

1. 부활을 시각 이미지화 하기 위해 "빈 무덤"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는 새로운 관점 전환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2. 어려운 개념을 아이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예화, 비유, 이미지화를 사용하고 동시에 하나만 집중 할 수 있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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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가 어렵죠? 그 마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열심히 한다고 달라지진 않더라고요. 

좋은 설교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상담이라도 한 번 받아 보세요. 정말 달라집니다. 

 

https://tutudaniel73.tistory.com/notice/27

 

설교가 달라지는 1:1 설교 코칭 이용 방법

설교는 사역자에게 영광이자, 가장 중요한 일 입니다. :: 하지만 설교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의 고민이죠. 성경을 주해하는 고된 작업을 지나, 다시 청중에 맞춰 설교문을 작성합

tutudaniel73.tistory.com

 


 

 

빈 무덤

요한복음 20:1-14

 

 

Opener. 

 

여러분을 위한 설교를 준비하다가 문득 생각했어요. 초등학생 때의 저에게 부활절은 어떤 날이었나? 특별한 기억이 없는거 같아요. 그냥 계란에 사람 얼굴을 그렸던 기억이 있고, 계란에 포장 비닐을 끼운 다음에 뜨거운 물에 넣으면 비닐이 쪼그라들면서 계란에 이쁘게 포장되던 장면? 정도가 떠올라요. 

 

그러다 그게 너무 아쉬운거예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나는 계란 포장을 하면서 그걸로 즐거워했다는게요. 코로나로 모든 것이 정지한 지금, 우리는 그 흔하디 흔한 계란 포장마저도 못하고, 그래서 한편으론 서글프긴 해요.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에선 계란 만들기 안하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 같아서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도 들어요. 

 

여러분에게 부활절이 진짜 부활을 마주하고, 생각하고, 기뻐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성령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 마음에 부활을 담아주시길 기도합니다. 

 

 

 

Chapter 1.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미마대 사람 요셉이 가지고 있던, 아직 아무도 묻힌적 없는 새 무덤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지역 우리 나라에서 보는 무덤과 다릅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땅에 시신을 묻죠. 그리고 흙을 쌓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무덤은 돌을 파서 만든 동굴 같은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예수님의 시신이 안치됩니다. 그리고 그 무덤의 입구는 큰 돌이 막아섰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의 안식일이었던 토요일이 지나고 안식일 첫 날, 곧 일요일 아직 어두운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무덤을 막고 있던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그 순간 베드로와 요한에게 뛰어갔어요. 그리고 무엇이라고 말하냐면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옮긴거 같아요. 어떻게 해요.” 이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도 깜짝 놀라서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갔어요. 새벽부터 헐레벌떡 뛰어갔을 거예요. 그런데 진짜로 무덤 문이 열려 있고, 안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아,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구나.” 마리아가 무덤 밖에서 울어요. 그 예수님을 누가 훔쳐갔을까. 어떻게 시신을 찾지? 우리 불쌍한 예수님은 장례도 똑바로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구나. 

 

 

 

Chapter 2.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그런데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이 일은 예수님께서 이미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이에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다고 이미 말했던 거죠. 그냥 농담으로 한 번 말하신 게 아니에요. 그런데 아무도 빈 무덤을 보고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뇨 못했어요.

 

심지어 울고 있는 마리아 뒤에 예수님께서 서계셨는데, 그리고 그 서계신 분을 봤음에도 마리아가 예수님인줄 몰라요. 왜냐하면, 살아있을수 없으니까요. 세상은 그런거니까요. 

 

이게 베드로와 요한이 멍청해서 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이 그 말씀 하실 때, 똑바로 안 들어서 그럴까요? 마리아가 정신을 못 차려서 그럴까요?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는게 정상적인 세상이기 때문에 그런거죠. 

 

사람이 태어나면 마땅히 죽는 것. 지금까지 그 누구도 죽은 후에 살아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그게 세상 이치이기 때문에 그런죠. 예수님은 그들의 눈 앞에서 죽으셨으니까. 무덤에 장사되었고, 커다란 돌이 그 무덤을 가로막고 있으니까. 시신은 거기 있어야 하는 거죠. 거기가 비어있으면 그건 누군가가 시신을 훔쳐간 것이라고 밖엔 생각할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 무덤이 비어있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이죠. 거기 있어야 하는 시체가 없어요.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이에요. 무덤은 예수님을 가둘수 없었어요. 죽음은 예수님을 붙잡고 있을수 없었어요. 지금까지 모든 사람을 죽였던 죽음을 예수님께서 죽이신 거예요. 

 

이젠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세상과 다른 세상이 열렸다는 것을 예수님이 보여주신 거죠. 빈 무덤을 통해 다른 결론이 생겼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적 없는 세상이 열렸다. 우리가 살아보지 못했던 다른 세상이 시작됐다는 걸 선포하신 겁니다. 

 

 

 

Chapter 3. 이제 우리의 결론은 달라졌다. 

 

 

썩은 우유인 우리의 당연한 결론은 썩은 우유로서의 인생의 마감이죠. 죄만 만들고, 죄만 짓고, 열심히 살지만 불행과 고통과 슬픔을 다 맞이하며 살다가 무덤으로 가는 거예요. 십수년의 결론으로 대학을 가고, 또 수십년의 땀과 노력으로 아파트를 사고, 차를 사고, 좋은 레스토랑에 갔으나 결국 모든 것을 두고 앙상한 시체로 사라져야 하는 존재가 사람이죠. 결국 나이가 들어 살아보면, 내가 뭐한다고 일만하며 살았나, 내가 무얼 위해 그리 고생했나하는 후회만 남는 것이 인간의 비참한 결론이었는데, 그러나 이제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제 다른 길이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선 우리 인생의 결론이 그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우리 인생의 결론이 바뀌었다고 말해줘요.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내가 아니고, 지금까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걸 빈 무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에요.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소망이에요.

 

 

 

Landing 4. 부활절이 기쁜 이유

 

 

부활절의 기쁨은 여기 있는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새로운 사람이 되었어요. 우리 인생은 아파트 사고, 차 사고, 레스토랑 가서 좋은 거 먹고, 돈 많이 벌어서 떵떵 거리다 죽는 인생이 아닙니다. 그런 인생을 두고 솔로몬은 “연기를 잡는 인생”이라고 하거든요? 연기를 먹어서 배 부르게 하려는 거죠. 그런데 이제 우리가 그런 허무한 인생이 아니라는 거죠. 

계란을 만들고, 옆 사람에게 부활을 인사하는 것 좋아요. 하지만 이 부활의 의미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부활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어요.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이제 여러분의 인생은 연기 잡다 끝나는 결론이 아닙니다. 이제 여러분은 고통과 절망과 후회만 남는 인생의 결론을 맺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 인간의 결론을 바꾸셨기 때문이에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앞으로 최소 2주간 부활에 관하여 더 설교할 거예요. 오늘은 한가지만 기억하세요. 우리는 이제 다른 인생을 살수 있어요. 소망의 삶을 살수 있어요. 지금 다 몰라도 돼요. 2주간 같이 알아가요.그러나 분명한건, 난 이제 태어나서 살다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이 오늘도 세상의 다른 결론을 만들어가십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예수님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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