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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설교문 예시

신명기 8장 1-10절 장년 설교 예시

by 진심설교코치 2023. 3. 28.

이 설교는 신명기 8:1-10의 말씀을 가지고 장년을 청중으로 하는 설교 원고 예시 입니다. 

 

오늘 설교 코칭

1. 문장을 짧게 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듣는 사람은 긴 문장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2. 한 절, 한 절 풀어가는 설교 방식을 선호하신다 하더라도 꼭 단락 시작에 그 본문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3. 본문의 이야기가, 오늘을 사는 청중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존 방식

신명기 8:1-10

 

Opener.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러나 배울 뿐, 우리는 그것을 믿진 않습니다. 곰곰이 한 번 생각해보시겠습니까? 정말 믿습니까? 오늘 내 삶에 극단적인 실패, 혹은 공황이 생긴다면 정말로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지탱하고 살게 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과 삶의 분리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결국 우리의 이성과 경험은 세상 속에서 공감해버렸습니다. 이 세상의 경제체제 굴레 밖에서는 비참함 밖에 없다고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방식에 공감해버린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들려주시길 원하십니다. 공감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나약함을 이해하시면서도 다시 한번 설득하시고,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배운 이야기가 실제 우리의 삶의 형태일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볼까요?

 

 


Chapter 1. 8:1

 

 

1절은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입니다. 네. 우리가 알고 있지만, 그리 살지는 못하던 그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켜 행하면 번성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대대로 그 혈통을 이어가며, 더불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기로 약속된 땅을 차지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떻습니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서 쉽게 접하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이건 엄청난 말씀이었습니다. 

당시 애굽과 같은 거대 제국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나라는 나라라고 하기보다는 도시 국가의 형태를 띄고 있었습니다. 도시국가는 어떻게 형성이 됩니까? 가족 단위의 족장들간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족장이 종과 양식, 지역 등을 확보하면서 규모가 커지는 것이죠. 단지 한 가족이 아닌 강한 가족을 중심으로 여러 가족이 모인 겁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른 족장의 재산에 대한 노략입니다. 
그러니 당시 그들이 살아 왔고, 살아가야할 세상의 먹을 것, 입을 것, 농사지을 땅과 살아갈 터전은 누군가로부터 빼앗은 것으로 채워진 것입니다. 약탈하고, 빼앗고, 노략하고, 전쟁해서 얻은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 생존은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원리가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선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 말을 지키면, 내가 번성하게 하고, 그 땅을 얻게 하겠다.”라고 약속하신 겁니다. 여러분들이 저 자리에서 모세를 통해 저 말씀을 듣고 있다면 무슨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까? 혹시 그렇게 했는데 약육강식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우리 자녀들이 종으로 살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지 않았을까요? 망한다는 두려움 말입니다. 

 

 

Chapter 2. 8:2-4

 

 

하지만 모세는 “기억하라”라고 말하며,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1절의 말씀이 새로운 말씀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이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경험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죠. 

그들은 지금 40년의 광야 생활을 통해 약속의 땅 입구에 있습니다. 그들이 들어갈 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깝습니다. 거기서 모세는 다시금 지난 40년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광야에서 보낸 40년의 시간이 바로 1절 말씀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길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그들이 걷고, 광야의 가운데 자리잡아 살아갔던 그때를 기억하라는 것이죠. 

광야의 때가 결코 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캠핑을 일주일만 한다고 생각해도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만약 캠핑을 40년이나 해야 했다면 그건 우리가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일테죠. 인생의 절반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살았다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그들을 시험하셨다고 말합니다. 명령을 지키시는지, 안 지키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 광야에서 그들은 자신을 낮추고, 크신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매일 그 땅을 덮는 만나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죠. 누군가의 것을 빼앗거나, 자신들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들이 먹어야 할 충분한 양의 음식은 하늘로부터 땅에 제공되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가만히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하지 못해서 오늘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광야같은 인생에 찾아오셔서 우리 삶을 살피고, 이끄시고, 무너져버린 우리를 일으켜 세우심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그저 컥컥거리는 울음만 쏟아낼 수 있을 그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살피셨고, 우리로 다시금 살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죠. 땅의 것으로 죽는다고 소리칠 때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하늘의 것으로 먹이시고, 힘을 내게 하셨지 않습니까?

그들이 걸었던 그 사막의 이야기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고유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인생길은 마치 광야길과 같아서 그 누구도 광야를 걸어가지 않을순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광야의 자리에서 경험합니다. “아, 나는 말씀으로 사는구나.” 광야같은 인생에서 우리는 결핍 가운데 하나님의 풍성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간 이끄신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오늘도 우리 삶에 변함없이 일하시고, 우리네 광야에도 끊임없이 결핍한 중에도 하늘의 것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송구영신예배 때만 그럴 것이 아니라, 날마다 광야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Chapter 3. 8:5-6

 

 

이어서 모세는 이 광야가 우리 인생에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이스라엘을 아들로 비유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척박한 광야에서 먹고, 마시며, 생존하게 하시는 이 일을 하신 이유는 훈련이랍니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으로 징계하듯이 말입니다.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징계하여 바른길로 하게 하고,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가게 하듯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훈련시키신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말입니다. 하나님은 훈련교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낙오 시키기 위해 훈련을 진행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더불어 술주정뱅이 아버지도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이스라엘을 광야로 몰아세워 훈련시키시는 이유는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을 광야에 두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겁니다. 살수 없는 땅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정말 내 인생의 본질이며, 생명이며, 힘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죠. 그리고 그 광야에서의 징계가 결국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겁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헛헛한 인생길, 광야같이 척박해서 하루에 몇 번이라도 못 살겠다고 마음으로 소리치는 그 자리가 우리에게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셔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안 계셔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훈련은 힘이 듭니다. 하지만 이 훈련의 결과는 성장입니다. 성숙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굳게 붙잡게 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어색하던 인생이 하나님을 더욱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의지하게 되고, 서툴던 인생의 여러 모습들이 하나님 앞에서 더욱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멋있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인생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죠. 

광야를 걷고 계십니까? 오늘도 아버지께서 아들인 우리로 인생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모나고, 미련한 우리의 발을 이끌어 하나님의 길을 걸어보게 하시고, 우리로 체득하게 하십니다. 그러니 오히려 이 시간 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도 사랑으로 그 길을 지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Chapter 4. 7-10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의 종착점은 어디였습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아름다운 땅입니다. 이 하나님의 땅은 골짜기와 산에 물이 흐르고 샘물이 나고 흐르는 땅입니다. 만약 우리가 광야를 걷고 있었다면 상상만으로도 침이 꼴깍 넘어갈 것 같습니다. 

밀과 보리가 자라고, 포도나무와 무화과와 석류가 납니다. 올리브 오일과 꿀이 나는 땅입니다. 곧 먹을 것이 끊어지지 않는, 풍족하고, 부족함이 없는 땅으로 인도하신 다는 것입니다. 

10절 읽어볼까요?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광야의 결론입니다. 그리고 이 결론은 1절의 결론이죠.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여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Landing. 결론

 

 

우리의 인생이 늘 광야인 이유는 어쩌면 우리는 늘 배우지 않으면 언제든 헛된 것을 따라가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풍요요, 우리의 존재라는 이유를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매일 망각하기 때문일테죠. 

하나님께서는 이 메시지를 통해 우리 마음을 다시금 환기 하십니다. 너희를 살게 하는 것은 돈이 아니다. 너희가 가진 것이 아니다. 너희의 열심이 아니다. 너희가 생존하고, 존재하는 것은 나의 말씀을 지키고,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그렇군요. 알고 있습니다!”가 아니라 정말 그러하다는 것을 우리보다 앞서 광야를 걸어갔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은 오늘도 세상의 법칙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야만 한다고 합니다. 그 길 외에는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그 법칙 안에 하나님의 자리는 없습니다. 그저 우리의 열심과 경쟁에서의 승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경쟁과 승리는 결국 누군가가 낙오해야하는 상황에서 내가 낙오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보세요. 누군가는 낙오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내가 아니기에 승리이고, 생존했다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신뢰하며, 오늘의 의미있게 그 말씀 앞에 나를 내어드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이나 그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을 배우고, 그 분을 더욱 능숙히 붙잡는 것을 체득하며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생존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풍요를 향해 질주하지 않고도 살아가는 나를 보게 될 것이고, 그것이 정말 나의 존재에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나와 함께 나를 찬찬히 하나님의 여정으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며, 그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갑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따르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에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사는 길입니다. 

오늘도 세상에 구걸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로서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며 아버지와 함께 걷는 아들로 사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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