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설교 기간이라서, 고난주간 설교 예시를 올립니다.
보시고 좋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설교 중에 본문이 같더라도, 청중이 다른 경우 아예 원고 구성이 다를 수 있으니,
그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도 느끼셨으면 좋겠네요.
이 원고는 14-19세 청소년들에게 전했던 설교인데,
저는 청소년 설교와 어른 설교의 차이는 분량 외에는 거의 없기 때문에 어른 설교에 참고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오늘 설교 코칭
1. 네러티브 본문일 경우에는 설교도 시간 순서대로 풀어간다.
2. 설교의 필요에 따라 이야기 스토리 라인을 바꾸면 이야기로서의 장점이 극대화 될 수 있다.
3. 등장인물의 모습, 시선, 감정 등을 충분하게 다뤄서 마치 청중이 현장에 있는 것 처럼 설교하라.
침묵과 외침
마태복음 27:27-31
Opener. 사건 현장으로 청중 끌고 가기
<tip. 뻔하게 예수님임을 주지시기키 보다, 궁금증을 만들어주기 위해 "한 남자"라고 표현 했습니다>
한 남자는 치욕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고 있어요. 제사장들은 그를 잡아다가 뺨을 때리고, 주먹으로 때리고, 얼굴에 침을 뱉았어요. 거기다 제사장들은 그를 향해 격분했어요. 그래서 그 남자를 사형수 취급하며 당시 예수살렘에 있던 총독에게로 끌고 갔죠.
사람들은 이 남자를 죽이라고 소리쳤어요. “십자가에 못 박아라!”, “십자가에 못 박아라!” 그런데, 이 남자는 죄가 없었어요. 총독도 “아니, 이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죽이라고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어요. 그러나 사람들은 미친듯이 날뛰었어요.
로마 총독도 어쩔수 없었어요. 군중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덤벼드니, 별수 없이 “십자가형”을 선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쩔수 없이 결정하죠.
Chapter 1. 침묵하는 한 남자
이 남자는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아무리 봐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사형선고를 받았어요. 죽인데요. 여러분 같으면 어떨 것 같아요. 소리라도 쳐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잘못한 것 없다!”,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러냐!” 아니면 총독에게 “저는 잘못한게 없으니 살려주시오! 억울합니다!”
그러나 이 남자는 분노에 찬 사람들이 “사형”을 외쳐도 침묵했어요. 한마다의 말도 하지 않습니다. 죄가 없다고. 나는 너희가 왜 나한테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아요. 그저 침묵을 지킵니다.
왜일까요? 이미 포기한 걸까요? 소리치고, 무죄라고 소리쳐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일까요?
Chapter 2. 이 남자는 침묵 말곤 할 줄 아는 것이 없는가?
병사들이 이 남자를 총독의 관저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 주변으로 600여명의 군인들이 모였습니다. 다들 좋은 구경을 하는듯, 히죽거리고, 껄껄거리고, 어떤 사람은 그 남자에게 상스러운 욕을 날리며 모여들었어요.
한 병사가 그 남자가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깁니다. 600명 앞에서 발가벗은 이 남자에게 붉은 웃을 다시 입힙니다. 그리고 가시나무로 만든 왕관을 만들어 그 남자의 머리에 씌웁니다. 가시에 찔린 이마에선 피가 흐르기 시작했어요.
옆에서 어떤 병사가 비켜보라며 뛰어옵니다. 비웃는 표정으로 그는 “왕이라면 당연히 왕의 규가 있어야지.”라고 말하며 그 남자의 손에 갈대를 쥐어줍니다.
그러자 갑자기 다들 발가벗은채 홍색 헝겊을 걸치고, 가시로 만들어진 왕관을 쓰고, 갈대가지를 손에 들고 있는 그 남자를 향해 엎드려 “유대인의 왕, 만세~!”라고 말하며 절 합니다. 그 동안 웃음을 꾹 참고 있던 병사들이 땅을 두드리며 웃습니다. 휘파람을 불고, 욕을 하며, 이제 그 남자를 향해 침을 뱉기 시작합니다. 손에 쥐고 있던 갈대를 빼앗아 조롱하며 머리를 때립니다.
이 남자는 여전히 침묵합니다. 죄도 없고, 억울한 누명을 썼으나, 아무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온 몸에 침이 흐르고, 600명 앞에서 웃음거리가 된 이 남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이 600명을 어찌 할수 없어 지금 이런 치욕을 당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얼마 전까지 죽은 나사로를 살리고, 물을 잠잠하게 하고, 물고기 두마리와 떡 다섯개로 20000명을 먹였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600명을 어찌 하지 못해 지금 수치를 당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럼 왜 아무 말씀도 안하고 수치를 당하고 계실까요? 왜 바보같이 예순님은 이 말도 안되는 일을 당하고 있을까요?
Chapter 3. 의도된 침묵
요한복음 18:2-9절에 보면 그 이유를 더 분명히 알 수 있어요. 요한복음에만 있는 특이한 내용인데, 예수님께서 잡혀가시던 밤에 있었던 일이에요.
제자들과 함께 숲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예수님을 잡으러 사람들이 무기를들고 찾아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누구를 찾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를 찾으러왔다”고 해요. 그런데 이 때 예수님께서 “내가 그다”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뒤로 밀려나서 쓰러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신적 능력을 사용하신거죠.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람에게 힘을 발휘하신 적이 없어요. 신적 능력으로 사람을 위협하신 적도 없어요. 그런데 그 능력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뒤로 밀어 넘어지게 한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가 요한복음 18:9에 나와요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을 한 명도 잃지 않기 위해.”
왜 그들을 그 신적 능력으로 밀치셨나. 제자들을 도망치도록 하기 위해서죠.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칠 시간을 주신거예요. 그리고 당신만 병사들에게 잡히기 위해서 그랬던 겁니다.
Landing. 예수님이 침묵하시며 꾸시는 꿈
그렇다면 오늘, 제자장들에게 뺨을 맞고, 600명의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조롱을 당하는 지금은 왜 그 신적능력을 사용하지 않을실까요? 왜 단 번에 다 밀쳐버리고, 유유히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지 않으셨을까요? 왜 보는 우리도 답답하게 그저 침묵을 지키실까요?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 외치셨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모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침묵하고 계시는 거예요. 비참하게 버림받고, 사형을 선고 받아 십자가를 져야 우리가 그 십자가로 인해 살기 때문에 예수님은 바보처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그 자리를 버티신 거예요.
무능력함이 아닙니다. 포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침묵의 자리에서 예수님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죠. 우리를 살리는 꿈.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으로 죄에서 해방되는 꿈.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꿈.
이 침묵은 저와 여러분을 살리기 위한 예수님의 몸부림이었어요. 오늘부터 토요일까지를 고난 주간이라고 해요.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깊이 생각하는 거죠. 여러분을 위해 고난 중에 침묵하시는 그 예수님을 기억하며 부활절에 만나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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